간혹, 그럴 때가 있다.  정말 보고 싶었거나 읽고 싶었거나 듣고 싶었던 것인데도 손이 잘 가지 않게 되는.  이유는 딱 두가지다.  간단 명료하게도 아껴두기 위함이거나 설렘의 귀차니즘?

 

아직도 읽지 않은 작품들이 많지만,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는 작품은(가장 사랑하는 작품은)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다.  그 작품을 읽고 난 후의 흥분한 그때가 아직도 미열처럼 남아있다.  오래도록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격한 작품이었다(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과 더불어).

 

이후, 국내에 소개된 서머셋 모옴의 작품이란 작품은 모두 찾아내어 읽었다.  아쉽게도 몇 작품 되지 않아서 굉장히 실망했었다.  결국 번역이 허접한(원서를 보진 않았지만 뭔가 맞지 않다는 느낌이 강렬했다) 단편집을 마지막으로, 그와 오래도록 이별을 고하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몰두했다.

 

몇년이 지났을까?

<페인티드 베일>이라는 서머셋 모옴의 생소한 작품이 영화화되었다.  이후, 원작과 더불어 '면도날'이라는 작품도 함께 출간되었다.  아무래도 영화<킹콩>에서 돋보였던 여배우 나오미 왓츠와 '대단한' 남자배우 에드워드 노튼이 주연한 영화이고 문학작품을 영화화했다는데서 얼마간 반향이 일어 모옴의 작품이 빛을 보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뭐, 나로서는 굉장히 반가울 따름이었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내가 좋아하는 두 배우의 열연과 더불어 서머셋 모옴의 작품이 영화화 되었다는 것은 실로 나의 두 눈을 반짝이게 할만한 요소였지만, 어쩐지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왜 그런거 있지 않나..한창 열에 들떠 있을 때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그 열이 가라앉았을 때 다가오면 바람빠진 풍선 마냥 흥이 나지 않는..아무튼 그런 상태였달까.?  아니 어쩌면 그 당시 찰스 디킨스나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에 빠져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오래도록 무관심하게 지나치다가 문득 가을보다 봄에 더 읽을 거리가 땡기는 나에게 '서머셋 모옴'이 딱! 떠오른거다.  급해진 마음으로 '페인티드 베일'과 '면도날'을 구매했다.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대해서는 실망한 기억이 다분해서 (대표적으로 여고시절에 잔뜩 들떠서 본 '제인 에어'는 최악이었다) 얼른 나오미 왓츠와 에드워드 노튼을 보고픈 마음을 접고 원작을 읽기에 서둘렀다.  책 두께가 생각했던 것보다 얇아서 살짝 우려되는 마음이 일었다.  책을 고를 때 두께감이 있는 걸 선호하기 때문인지도(책의 두께가 이야기 전개의 흐름과 비례한다는 생각 때문일지도.)모르지만..

 

 

<페인티드 베일>은 시간에, 나이에 쫓겨 사랑없이 결혼한 키티가 세균학자인 남편, 월터의 사랑을 뒤로 하고, 불륜을 행해 남편이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경박한(월터의 표현에 의하자면) 그녀를 사랑한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헌신적인 사랑을 배신한 그녀를 경멸하며 콜레라가 들끓는 오지로 함께 떠나 생활하는 그들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인데, 음..읽고 난 후의 느낌은..역시 우려했던 것처럼 전개가 빨랐다.  나는 1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하루를 담은 듯한 것처럼 알려주는 걸 좋아한다.  나의 호흡이 느려서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아로새겨지는 게 더 많다고 해야할까?  읽은지 오래되었지만, 그 느낌만은 분명한 '인생의 굴레에서'와 '달과 6펜스'와는 달리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초기 작품인가하여 작가 연보를 보니 오히려 앞의 두작품보다 늦게 집필한 것이었다.  흠..아무래도 그 두 작품에 너무 열을 올렸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작가의 말대로 그간의 인물중심 작품이 아니라 이야기 중심 작품이어서 그랬던 것일까?  그래도 역시 서머셋 모옴은 서머셋 모옴인지라 흡입력은 좋았다.  뭐, 예상치 못한 결말로 아쉬운 마음에 뒷쪽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영화에서는 키티와 월터를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간다.  원작에서와는 사뭇 다르게 다정하다.  원작에서는  두 사람의 비극이 언뜻언뜻 공포스럽게 내비쳐지지만, 영화에서는 살짝 가벼운 모습이다.

 

영화와 원작의 다른 느낌을 자세히 집어보면, 우선 월터의 냉정한 침착이 영화에서는 덜했다.  원작에서는 월터를 떠올리자면,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그의 분노와 슬픔이 크게 와 닿았었다.

내용상 여주인공 키티의 여성성이 확립되어지는 과정을 그린 것이지만, 내면의 복잡함은 남자 주인공 월터가 훨씬 강하다.  왜냐하면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키티는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기 때문에 그녀를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지만, 결벽적으로 마음을 보이지 않는 월터는 훨씬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영화에서의 월터는 좀 더 놓여난 느낌이고 좀 더 부드럽다.

 

 

급기야 영화에서는 월터의 "용서해줘"라는 말로 두사람이 노골적인 화해를 함으로써 사랑으로 끝맺는다.

 

원작에서는 여위고 지친 월터의 모습에서 자신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었으며, 결코 그녀를 용서하지도 경멸하지도 못하는..오히려 자신을 경멸하다 못해 비극적인 선택을 한 월터를 마주하며 그에 대한 미미한 사랑을 깨닫게 되어 용서를 구하는 키티와 "죽은 건 개였어"라는 회한섞인 마지막 말로 암묵적인 그들의 화해를 보여준다.

 

원작 자체도 흐름이 빨랐지만, 영화는 더 빨라서 여운이 덜했지만, 나오미 왓츠와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는 좋았다.  역시 에드워드 노튼은 섹시했다. 하핫^^;; 그를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를 본 게 너무 없어서 이제부터 무지막지하게 달려볼 생각이다.

 

간간이 '면도날'도 함께.

 

덧붙힘 : 원작에 비해 인물의 심리는 덜 묘사가 되었지만, 주변 배경은 설득력 있게 표현된 점은 영화가 더 좋았던 것 같다.

Posted by 희망은 수고에 미소를 보낸다 by l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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